토트넘 홋스퍼 팬들의 가슴은 지금 혼란과 기대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을 겁니다. 지난 10년간 토트넘의 상징이었던 손흥민 선수가 팀을 떠난 지 불과 한 달,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기도 전에, 25년간 구단을 지배해왔던 다니엘 레비 회장이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손흥민 선수의 이적이 토트넘의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레비 회장의 퇴장은 토트넘이라는 구단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팬들이 그토록 외치던 ‘레비 아웃’이 현실이 된 지금, 과연 토트넘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요? 그리고 이 변화는 과연 긍정적인 신호일까요?
다니엘 레비, 사업가와 축구 구단주 사이의 줄타기
다니엘 레비 회장을 단순히 ‘짠돌이’ 구단주나 ‘축구 문외한’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토트넘을 이끌었던 지난 25년간의 세월은 구단 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그는 토트넘을 단순한 축구 클럽이 아닌,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로 탈바꿈시켰습니다. 1조 7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최첨단 신구장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을 건설했고, 구단의 재정적 안정성을 극대화하며 ‘가장 수익성 높은 프리미어리그 클럽’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레비 회장의 탁월한 사업적 수완 없이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축구 팬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무제표의 숫자나 구장의 웅장함이 아닙니다. 바로 ‘트로피’와 ‘승리’입니다. 레비 회장은 이 부분에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25년 동안 무려 14명의 감독을 갈아치우면서도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과 유로파리그 우승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단명 감독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쓴 배경에는 레비의 냉정한 계산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선수 영입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손흥민 선수의 이적 협상 당시 끝까지 이적료를 깎아내려 ‘냉혈한’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후 재계약 협상에서도 구단의 원칙을 고수하며 팬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그는 구단을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운영했지만, 그 과정에서 축구 본연의 가치인 승리와 열정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손흥민의 빈자리, 레비 시대 종말의 결정적 신호탄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을 떠난 뒤, 팀은 예상대로 흔들렸습니다. 시즌 초반 리그 17위까지 추락하며 강등권 문턱까지 내몰렸고, 결국 구단은 유로파리그 우승을 이끈 앤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경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유로파리그 우승이라는 성과를 냈다고는 하지만, 동시에 최악의 리그 성적을 기록했기에 구단 입장에서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팬들은 “손흥민이 있었을 때조차 구단이 제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며 레비 회장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동안 누적되었던 팬들의 불만과 분노는 손흥민 선수의 이탈과 맞물려 폭발했습니다. 팬들은 ’24년, 16명의 감독, 트로피 1개’라는 현수막을 들고 경기장 밖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레비 회장에게 쏟아지는 비판은 단순한 성적 부진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구단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절망감, 그리고 더 이상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이었습니다. 손흥민이라는 확실한 ‘안전핀’이 사라지자, 토트넘은 맨얼굴을 드러냈고, 그 민낯은 레비 회장 시대의 종말을 재촉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포스트 레비 시대’의 토트넘,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이제 토트넘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다니엘 레비 회장의 후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구단의 실질적인 소유주였던 ENIC그룹 이사진이 임시 의장직을 맡으며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회장의 교체를 넘어, 경영 방침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토트넘은 ‘사업가’의 논리가 아닌, ‘축구’ 그 자체에 집중하는 리더십을 원할 겁니다. 팬들은 더 이상 구단의 재정 건전성만을 칭찬하는 데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승리를 갈망하고, 트로피를 원하며, 선수단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리더십이 곧바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레비 회장 체제에서 익숙해진 구단의 문화와 시스템을 바꾸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새로운 감독 선임은 물론, 손흥민 선수의 빈자리를 채울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하고, 팀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토트넘 팬들이 그토록 바라던 ‘변화의 기회’가 마침내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다니엘 레비 회장은 토트넘을 재정적으로 성공시킨 탁월한 사업가였지만, 동시에 팬들의 오랜 염원인 ‘승리’와 ‘트로피’를 선물하지 못한 구단주였습니다. 이제 그의 시대는 끝났고, 토트넘은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과연 토트넘이 새로운 리더십과 함께 ‘사업’을 넘어 ‘축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팬들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토트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